시카고 <한국 순교자의 모후> 성당
유승원 요한
그 날이 오면
책상 서랍을 열어 만년필을 꺼낸다. 요즘 누가 만년필을 쓰느냐 물어도 대꾸할 생각은 없다. 종이 위에 서걱거리며 남기는 그 흔적을 쫓는 느낌이 좋아 만년필을 꺼내어 나는 쓴다. 펜촉을 통해서 종이의 질감 – 나의 만년필과 궁합이 잘 맞는 종이를 찾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이다 - 을 아득하니 느낀다고나 할까. 아무려나 나는 만년필을 꺼내어 쓴다.
보통 우리가 펜촉이라 부르는 것의 정식 명칭은 ‘닙 nib’인데 그 크기는 필기감에 큰 영향을 준다. 닙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운데가 갈라져 대칭을 이루고 그 갈라진 틈을 ‘슬릿 slit’이라 칭한다. 펜 몸통에 잉크를 담아두는 ‘배럴 Barrel’을 통해 잉크가 흘러나와 닙의 슬릿을 따라 펜의 가장 끝, 곧 ‘펠릿 pellet’에 잉크가 이르러서야 원하는 글자가 종이 위에 새겨진다. 그저 잡아 쓸 때는 지나쳤으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과정이 담겨 있다.
만년필을 장시간 사용을 하지 않고 방치해두면 원활히 흘러야 하는 잉크가 길을 막고 굳게 된다. 종이 면에 이르기까지 펜의 어느 한 곳이라도 잉크가 말라 굳으면 글씨는 써지지 않는다. 펜 끝이 말라붙어 나오지 않는 볼펜처럼 반복적으로 원형을 그리며 종이 위에 강하게 힘을 주어 강제로 써볼 생각이랑은 말자. 펜촉만 상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만 기다릴 뿐이다. 그러니 흐르는 물로 잘 세척을 해줘야 하는 것도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기다리는 하나의 의식이다.
만년필을 세척하면서 꽤 흥미로운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내 경우에는 펜촉에 마른 잉크를 제거하기 위해 물컵에 물을 담아서 세척을 하는데 결국 세척이 잘 되었는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컵에 담긴 물이 잉크색으로 물드는지 맨눈으로 확인하는 길뿐 다른 방도를 아직 찾지 못하였다..
맑은 물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지면 그 물은 잉크색으로 물이 들어 탁해진다. 검은 잉크면 검은색으로, 파란 잉크면 물빛도 진하지는 않지만 파랗게 변한다. 한 방울의 잉크인데도 컵 안의 물은 정확히 그 한 방울만큼 물이 들어 퍼진다. .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죄는 “하느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이라고 정의한다. 이 죄의 첫 번째 속성이 바로 확산성이다. 한 방울의 잉크가 컵에 담긴 물 전체를 물들게 하는 것과 같이 죄라는 것도 그 자체로 머물러 있지 않고 다른 것들을 죄로 물들게 하는 속성이 있다.
만물이 약여히 창조된 그 낙원에서도 어느 간교함에 넘어간 첫 인류가 범한 것도 상대를 끌어들이는 것임을 기억해 보자. 세상은 다 깨끗한데 나만 지저분하다면 그것만큼 불안하고 불편한 일도 없다. 그리하여 함께 더러워질 누군가를 찾게 된다. 같이 지저분하면 조금은 덜 더러운 것 같아서일까.
그날이 오면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는 불구덩이에 던져진다 말씀하셨다. 공범자를 만들지 말라는 경고로 울린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얽매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오히려 십자 형틀을 지고 매달리셨다. 잘못한 이들을 불러 모아 의로운 이들로 재창조하셨다. 죄 중에 허덕이는 이들을 가슴 깊이 안타까이 여기셨다. 그러니, 나 편해지자고 멀쩡한 사람을 꼬드겨 공범자가 되게끔 한다면 그것만큼은 영 변명이 통하지 않을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