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부의 <일러두기>#8
시카고 <한국 순교자의 모후> 성당
유승원 요한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모르는 그 이름
서울에 다녀왔다. 그곳에 도착해 한동안은 여기 남겨 둔 것이 내 삶인지 거기 두고 온 것이 내 시간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시간은 과거 – 현재 – 미래의 순으로 흐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오래된 생각을 다시 해보며 흩어지는 감각을 애써 주워 담아 챙겨야 했다. 그것도 잠시, 주어진 시간 안에 끝내야만 하는 일을 한 번에 하나씩 하다 보니 순차적으로 흐르는 시간에 빠르게 순응하게 되었다. 무표정한 표정의 사람들 안에 말없이 섞여 들어가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소란한 소음이 가득한 명동 거리를 걸으며, 두고 온 곳의 고요함과 적막함을 잠시 그리워하기도 했다. 기묘하고도 요상하게 서울의 시간은 풀어두고 온 시계보다 빨리 돌아가 그리움을 즐기는 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낯익은 분주함과 익숙한 소란함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아질 때쯤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송혜희를 아는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르는 그 이름, 송혜희.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오가며 어디서든 이 현수막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국도변에서도 본 기억이 있으니 나의 말은 매우 높은 확률로 그러할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찾아 나선 혜희 씨는 아직도 그 소식을 접할 길이 없나 보다. 99년도에 17살이었으니 이제는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기 힘든 세월이 지났다. 동네방네 방방곡곡을 누비며 전단지와 현수막을 돌리고 내다 건 시간이 혜희 씨를 17년간 애지중지 키운 시간보다도 훌쩍 지나버렸다. 불가능한 방식으로만 가늠 가능한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려 보며 그 현수막에 다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이 혹시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다.
별안간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가산을 모두 정리하고 전단과 현수막을 만들어 화물차에 싣고 딸의 어미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도통 소식은 없다고 한다. 심지어 견디기 힘든 시간을 견디어내며 술과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하던 어미는 결국 알코올에 중독되어 심장병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딸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한 줌의 흙이 되었다고 한다. 애끊어지게 찾았으나 도무지 찾지 못하고 또 한 사람을 잃고 말았다. 딸의 아비도 다 포기하고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단다. 허나, 잃은 딸을 찾기 전에는 눈을 편히 감을 수 없으니 딸아이를 찾는 데 도움을 주시는 분에게는 심장을 팔아서라도 보답을 하겠노라 아비가 돌린 전단지 뒷면에 명확히 쓰여 있다.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틔우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청의 이야기는 들은 바가 있거늘, 잃은 부모를 찾기 위해 본인의 인생을 내던진 이야기를 그 후 여적 나는 들은 바 없다. 그리하여 아비의 심장을 팔아서라도 잃어버린 딸을 찾는다니 이보다 더 애 녹는 문장을 나는 본 적이 없다.
현수막에 나와 있는 ‘평택시 도일동’이 어디인지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전단에 나와 있는 중학생 때 사진과 실종 당시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사진만으로는 지금의 모습을 가늠하기가 어렵지만, 애타게 찾다 못해 애가 끊어져 녹아내린 저 부모의 마음을 털끝만큼도 느껴 볼 길이 없지만, 내다 걸어놓은 저 현수막을 볼 때마다 매번 덜컥 마음이 내려앉는다.
남은 가족들의 저 척박하고 메말라버린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 날이 올까. 그때와 방법을 나는 도무지 알지도 찾지도 못하겠다. 다만, 흐릿한 사진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모든 이들이 알고 있지만 모든 이들이 모르는 그 이름을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눌러 적는다. 평택시 도일동 송혜희. 한 번 더, 잃은 딸을 백방으로 나서 찾는 그 아비의 마음으로 그이의 이름을 불러 본다.
“이름은 송혜희입니다. 실종된 저희 딸아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