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부의 <일러두기> #9
시카고 <한국 순교자의 모후> 성당
유승원 요한
희망 없는 곳에 희망은 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Marcus Tullius Cicero. BC106 ~ BC43). 고대 로마 시대의 문인이자 철학자였고 정치가였으며, Ciceronian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와 같이, 수사학에 뛰어난 웅변가였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그가 남긴 것 중 『국가론』은 로마인들이 국가에 관해 어떤 토론을 벌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저작으로 평가된다. 키케로는 인간이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게 된 원인을 자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서 찾는데, 여기서 키케로는 ‘인간의 여섯 가지 실수’를 언급한다.
남을 깎아내리면 자기가 올라간다고 착각하고, 바꾸거나 고칠 수 없는 일을 고민하고 걱정한다.
어떤 일을 자기가 이룰 수 없으니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사소한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다.
생각의 발전과 진보를 무시하여 독서하고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강요한다.
누가 남긴 문장인지 그 이름을 지우면 오늘을 사는 이의 언사라고 해도 전혀 낯선 것이 없다. 시대를 초월하여 전 인류를 관통한 그의 통찰력이 남긴 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까지 쓰고 나의 문장은 멈추었다. 완전히 멈췄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한참을 맴돌며 쓰인 문장을 되짚어 볼 뿐이었다. 무엇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한참을 들여다보았으나 잡힐 것 같은 문장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나가듯 흩어져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한참을 앉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고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제자리걸음을 맴돌게 한 저 언사가 향하는 바가 인간이었기에 멈추었다는 것을 나는 애써 찾아내었다. 인간이란 정해진 인풋에 동일한 아웃풋을 만드는 기계가 아니다. 설정값을 바꾸고 부품을 교체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각자에게 주어진 유일회적인 삶은 말 그대로 단 한 번 살 수 있기에 모두에게 삶은 처음 걷는 길이다. 두 번 사는 인생은 없다. 전생도, 환생도, 윤회도 우리에게는 없다. 단 한 번, 오로지 한 번의 삶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흔히 입에 담는 이 말은 옳다. “사람 다 똑같다. 세끼 밥 먹고 사는 것은 다 똑같다.”
내친김에 한 번 더 의심해보자. 이것은 어떤가. 육식하지 않는 사람과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 밥 먹기 전에 물을 마시는 사람과 밥을 먹은 후에 물로 입을 헹구는 사람, B형 간염 보균자와 B형 간염 항체가 없는 사람, 대학을 나온 사람과 중학교를 마치지 않은 사람, 평전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챙겨 보는 사람, 쇼핑을 오래 하는 사람과 좁은 골목을 천천히 걷는 사람, 강에서 웨이크보드를 타는 사람과 안개 걷힌 강가에서 노트를 펼치는 사람, 집이 가난한 사람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 사랑을 믿는 사람과 사람을 믿는 사람. 십인십색, 100명이 있으면 100명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러니 “사람 세 끼 밥 먹고 사는 것은 다 똑같다.”는 말은 옳지 않기도 하다.
키케로의 통찰이 남긴 것은 보편 인간으로부터 부정적인 것을 모아 지적하였다. 이 스펙트럼을 길게 늘여 말하자면,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갖은 실수를 반복한다. 1, 2차 대전의 비참함을 겪고도 또다시 반복하는 이들을 보라.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지나친 허상인 것인가.
남을 깎아내리면 스스로 올라간다는 적자생존의 착각을 깨닫고 스스로 낮은 곳을 향하는 이들이 있다. 걱정도 팔자라 바꾸거나 고칠 수 없는 일이라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한 걸음 내어 딛으려고 고심 끝에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가 이룰 수 없으니 불가능한 일이라 주장하는 위대한 착각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있으며, 사상의 진보를 위해 오늘도 도서관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나를 따르라는 구호 아래 모이지 않고 홀로 옳은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함께 한다.
아침에 잡아먹을 듯이 다투고 저녁에 머리를 맞대고 한 그릇의 라면을 나누어 먹으며 다시 웃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니 희망 없는 곳에 희망은 있다.